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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글

[박종형] 축복하소서


축복하소서


박종형



하느님, 

당신의 사랑과 권능으로 축복하실 양이면

먼저 정직하고 성실한 밥벌이꾼들을 축복하소서.

저들의 건강한 아내들을 축복하시되,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느라 힘들어도

그 생명을 하느님께서 주셨음을 감사하여

열 번째 잉태를 허락하시면 기꺼이 낳겠다는

위대한 모정에 축복하소서.


모든 정직한 생산자들을 축복하시되

평생 천직으로 알고 농사지은 밭에서

햇감자를 수확하며

갈퀴 손으로 웃음을 가린 채

그 소박한 행복마저 내보이기 수줍어하는

촌부에게 축복하소서.


장님이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자전거를 타고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나무 탁자에 걸터 앉아

살가운 평생 이웃들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게 자신이 사는 행복이라고 웃으며

동리 품앗이가 줄어들게 걱정이라 하는

애옥한 삶에게 축복하소서.


여린 손으로

어린 동생의 밥상을 차려내고

빨래를 하며 연탄을 갈아도

눈물을 감추고 동생을 다독이며

어서 어서 자라 간호사 되겠다고

꿈꾸는 소녀가장을 축복하소서.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겨울이면 굶는 새들을 위해 먹이를 날라다 뿌려주며,

어쩌다 산행 길 지근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은 날은

뜻밖의 행운이라 즐거워하는

산사람에 축복하소서.


동냥 그릇에 지폐 한 장을 가만히 놓고는

마치 너무 약소해 미안하다는 듯이

뛰어 사라지는 소녀의 마음과

비탈진 골목에 손 컨베이어를 만들어

독거노인 집에 연탄을 날라 재어주는 인정과

병든 노인을 찾아가 청소를 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청년들의 선행에 축복하소서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치료할 뿐

치유하는 이는 하느님이시니

행여 실수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땀 범벅이 되어 나오는

의사에게 축복하소서.


박봉에서 성금을 헐어

매달 또박또박 자선단체에게 송금하는 성의와

무료급식소에서 밥 짓고 설거지 하는

사제와 목사와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손들과

곳곳에서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도우미로 봉사하는 이들 모두에게 축복하소서.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하고

나보다 못한 삶만 내려다보며 살아도

고작 가족 부양에 애면글면 허덕이는 처지에도

공연히 부자를 욕하지 않고

부정한 돈을 탐내지 않으며,

세금 꼬박꼬박 납부하고

이웃에 폐 끼치지 않고 질서와 법규를 충실히 지켜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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